버스 안내양(차장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면
―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버스 풍경

지금 버스를 타면
운전기사님 혼자 앉아 있고,
승객들은 각자 휴대폰을 보고 있다.
정류장 이름은 전광판이 알려주고,
요금은 카드가 알아서 계산해준다.
너무 익숙해서
이게 원래 버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버스 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뒤로 좀 가주세요.”
“손잡이 잡으세요.”
“다음은 ○○시장입니다.”
버스 안내양,
혹은 차장님이라 불리던 사람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버스 풍경의 중심에 있던 존재다.
버스 안에 사람이 더 있던 시절
버스에 타면
가장 먼저 보이던 건
안내양의 모습이었다.
제복처럼 정해진 복장,
허리에 찬 동전 주머니,
손에는 요금표나 마이크.
승객이 타면
요금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고,
사람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 시절 버스는
지금보다 훨씬 혼잡했다.
출퇴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안내양은
버스 안을 오가며
사람들을 정리했다.
“뒤에 자리 있어요.”
“학생은 학생 요금이요.”
“내리실 분 먼저 내려주세요.”
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작은 사회 같았고,
안내양은 그 사회의 질서를
몸으로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소음과 질서
지금의 버스는 조용하다.
엔진 소리와 안내 음성만 흐른다.
하지만 그 시절 버스는
사람의 소리로 가득했다.
안내양의 목소리,
승객들의 질문,
가끔은 농담 섞인 말들까지.
그 소음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살아 있었다.
요금이 모자라면
다음에 내겠다고 말하던 사람,
아이를 안고 타면
자리를 정리해주던 장면,
내릴 정류장을 놓칠까 봐
미리 알려주던 안내양의 배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시스템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라진 직업, 달라진 풍경
버스 안내양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자동 요금 시스템,
카드 결제,
정류장 안내 방송.
효율은 높아졌고,
사람은 줄었다.
하지만 함께 사라진 것도 있다.
버스 안의 인간적인 긴장과 온기,
즉석에서 조정되던 질서.
지금은
모든 게 시스템으로 정해져 있다.
편리하지만,
누군가의 판단이나 배려가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유
버스 안내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직업 하나를 떠올리는 게 아니다.
그 시절의 이동 방식,
사람 사이의 거리,
일상의 속도를 함께 기억한다.
버스 안에서
사람이 사람을 안내하던 시절.
그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풍경이다.
그래서 더 또렷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
요즘 아이들에게
“버스에 안내양이 있었다”고 말하면
대부분 믿지 못한다.
왜 굳이 사람이 필요했냐고 묻는다.
맞는 말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굳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던 구조였기 때문이다.
사라진 건 사람이 아니라 감각일지도 모른다
버스 안내양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공간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는 말을 걸고,
누군가는 정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졌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화면을 보고
조용히 이동한다.
편해졌지만,
조금은 비어 있는 느낌도 든다.
버스 안내양, 차장님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지금과는 다른 리듬의 도시를
살아본 사람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 버스 풍경은
불편했지만,
사람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아직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