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직접 해본 이야기
― 새벽의 공기와 동네 풍경이 남긴 기억

아직 해가 뜨기 전,
세상이 가장 조용한 시간에
나는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알람 소리는 늘 잔인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몸은 거부했지만,
일어나야 했다.
신문 배달은
‘미루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본다.
신문을 집 앞에서 받는 풍경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고,
나는 그 일을 직접 해본 적이 있다.
새벽 4시, 세상과 나만 깨어 있던 시간
신문 배달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밤의 연장이었다.
새벽 4시쯤 집을 나서면
동네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간간이 지나가는 차 한 대가
괜히 크게 느껴졌다.
신문 묶음을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손에 찬 공기를 느끼며
첫 집을 향해 갔다.
겨울에는 숨이 바로 보였고,
여름에는 벌써 습기가 느껴졌다.
계절은
이 시간에 가장 솔직했다.
새벽의 공기는
낮과 전혀 달랐다.
맑고 차가웠고,
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다.
동네를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
신문 배달을 하면서
나는 동네를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었다.
가게 셔터 앞에 놓인
갓 배달된 물건들,
새벽에 청소를 끝낸 흔적,
이미 불이 켜진 집 한두 곳.
평소에는
절대 보지 못할 장면들이었다.
어떤 집은
항상 같은 시간에 불이 켜졌고,
어떤 집은
신문이 쌓여만 갔다.
그걸 보며
괜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집엔 무슨 일이 있을까.’
‘저 집은 왜 신문을 안 볼까.’
신문 배달은
말 없는 관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남은 감각
신문 배달은
절대 편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잠은 항상 부족했고,
비 오는 날은 특히 힘들었다.
신문이 젖지 않게
비닐을 씌우며
손은 더 차가워졌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시간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아마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완전한 혼자만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벽의 도시는
조용했고,
나는 그 안에서
작아지기도 하고
또렷해지기도 했다.
신문이 사라지고, 새벽도 달라졌다
지금은
신문 배달을 보기 어렵다.
신문 자체를 구독하는 집이 줄었고,
새벽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불은 더 많아졌고,
사람은 더 바빠졌다.
새벽이 더 이상
‘쉬는 시간’이 아니게 된 느낌이다.
신문 배달이 사라지면서
동네의 리듬도 함께 바뀐 것 같다.
새벽의 기억은 아직 남아 있다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는
내 인생에서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 새벽의 공기와 풍경은
아직도 선명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아주 적당했다.
신문 배달을 했던 그 시절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하나의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