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매장에서 CD 고르던 경험
― 스트리밍 이전, 음악을 ‘소유’하던 감각

지금은
음악을 고르기보다
흘려듣는 시대다.
검색창에 제목만 치면
바로 재생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곡으로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때는
음악을 듣기 위해
직접 매장에 가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었다.
음반 매장은
단순히 CD를 파는 곳이 아니라
음악을 고르는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음악을 ‘소유’하고 있었다.
CD 한 장을 고르기까지의 시간
음반 매장에 들어서면
먼저 특유의 공기가 느껴졌다.
플라스틱 케이스 냄새와
종이 인쇄물 냄새가 섞인 공간.
신보 코너,
장르별 진열대,
국내 / 해외 아티스트 구분.
그 앞에서
사람들은 한참을 서 있었다.
CD를 하나 집어 들고
앞면을 보고,
뒤집어 트랙 리스트를 읽고,
가사집을 살짝 넘겨보며
고민했다.
가격은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은 신중했다.
한 장을 고르면
그 음악과 꽤 오랫동안
함께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CD를 고른다는 건
취향을 고르는 일이었고,
때로는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음악을 ‘소유’한다는 감각
CD를 계산하고 나와
비닐을 뜯는 순간의 설렘.
집에 돌아와
CD 플레이어에 넣고
첫 트랙을 재생하던 기억.
음악은
그때 비로소 내 것이 됐다.
CD는
파일이 아니라 물건이었다.
손에 잡히고,
책장에 꽂히고,
쌓이면 쌓일수록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가
눈에 보였다.
가사집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 시간,
트랙 순서를 외우게 되는 경험.
이 모든 것이
소유의 일부였다.
지금은
수천 곡을 언제든 들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곡을 좋아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스트리밍 이후, 달라진 음악의 위치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음악은 훨씬 가까워졌다.
접근성은 좋아졌고,
선택의 부담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음악의 무게도 가벼워졌다.
예전에는
한 장의 CD를 오래 들으며
자연스럽게 곡의 흐름과
아티스트의 의도를 이해했다.
지금은
플레이리스트 단위로
음악을 소비한다.
곡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얕아졌다.
음악을 ‘듣는 것’은 쉬워졌지만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사라진 건 매장이 아니라 태도
음반 매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에
다른 가게들이 들어섰고,
CD는 취미나 콜렉션의 영역이 됐다.
하지만 사라진 건
공간만이 아니다.
음악을 대하던 태도,
기다림, 선택, 책임.
CD를 고르던 경험은
음악을 쉽게 넘기지 않게 만들었다.
그 선택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은
더 오래 남았다.
음악을 소유하던 시절을 기억하며
음반 매장에서 CD를 고르던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그건
음악과 맺던 관계의 방식이었다.
스트리밍 이전,
우리는 음악을 ‘소유’했고,
그래서 더 깊게 들었다.
지금의 편리함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한 장의 CD에 집중하던
그 감각이 그립다.
아마도
음악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