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에서 주말마다 줄 서던 기억
― 연체료 때문에 괜히 조마조마했던 그 시절

금요일 저녁이 되면
괜히 마음이 바빠지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한 블록을 더 돌아
동네 비디오 대여점 앞을 지나갔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형형색색 비디오 케이스들.
주말을 함께 보낼 영화가
이미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참 많은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그 불편함마저
이상하게 설레던 시절이었다.
주말 앞둔 비디오 대여점의 공기
토요일 오후의 비디오 대여점은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특유의 냄새가 났다.
플라스틱 케이스 냄새와
오래된 카펫 냄새가 섞인 공간.
벽면에는
최신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가운데 진열대에는
“신작”, “추천”, “대여 중”이라는
손글씨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케이스를 하나씩 들었다 놨다 했다.
이미 누군가 대여해간 영화의 자리는
텅 빈 케이스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걸 발견하는 순간
괜히 허탈해졌다.
“아… 이거 오늘 다 나갔네.”
그때는
보고 싶은 영화 하나를 못 빌리면
주말 계획 전체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연체료라는 이름의 압박감
비디오를 빌리고 나면
그때부터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즐겁게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날짜를 계산했다.
“이거 언제까지였지?”
“일요일까지 맞나?”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대여 날짜 종이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연체료는 생각보다 부담이었다.
하루 이틀만 지나도
괜히 죄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이 끝나면
월요일 아침이 되기 전에
서둘러 비디오를 반납했다.
가끔은 비 오는 날에도,
귀찮은 날에도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반납함에 비디오를 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마치 무언가 큰 책임을
무사히 끝낸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보다 연체료가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웃기다.
하지만 그 조마조마함이
그 시절의 일부였다.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또렷했던 기억
지금은 클릭 한 번이면
보고 싶은 영화를 바로 볼 수 있다.
연체료도 없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처럼 영화가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영화를 고르는 시간부터
이미 경험이 시작됐다.
어떤 영화를 고를지 고민하고,
케이스 뒷면 줄거리를 읽고,
다른 사람 손에 들린 영화도 힐끗 보고.
집에 돌아와
비디오를 재생 버튼을 누를 때의 긴장감.
혹시 화질이 안 좋지는 않을지,
중간에 테이프가 늘어나 있지는 않을지.
불편했지만
그래서 모든 장면이 더 또렷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먼저 봤던 테이프,
조금 닳은 케이스,
손때 묻은 스티커들.
그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다.
사라진 건 공간이 아니라 감각일지도 모른다
비디오 대여점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섰고,
간판만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정말 사라진 건
가게가 아니라
그 시절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기다림, 선택의 무게,
조금의 불편함에서 오는 설렘.
그리고 연체료 때문에
괜히 마음 졸이던 그 긴장감까지.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편하다.
그래서 더 자주 흘려보낸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줄 서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기대하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같다.
주말마다 비디오 대여점에 줄을 서던 기억.
연체료 때문에 괜히 조마조마했던 그 시절.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아마도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